징비록 102927


징비록

날짜 : 20150805 ~ 20150930

장소 : 국립민속박물관

서울 미술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과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8월 5일부터 9월 30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징비록』특별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 상설3전시관의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이야기 "충효 이외 힘쓸 일은 없다" 전시와 연계하여,『징비록』(국보 제132호)을 중심으로 『난후잡록』(보물 제160호), 투구와 갑옷(보물 제460호) 등 30여 점이 전시된다.

징비록 전시 포스터

경계하고懲 삼가는毖 마음으로 충忠을 쓰다

이번 전시는『징비록』서문의 “징비록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시작되는 도입부에 이어,
1부 ‘영의정으로서 임진왜란을 극복하다’에서는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임진왜란의 피난 중에 영의정과 도체찰사(군사령관)가 되어 7년여 동안 선조를 보좌하면서 민심을 수습하는 등 국난 극복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문서 및 유품들이 전시된다. 여기에는 개성으로 피난하는 도중에 영의정으로 임명된 교지, 도체찰사로서 사용했던 투구와 갑옷, 전쟁 중에 문서를 넣어 휴대하였던 유서통,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이 류성룡에게 시를 써서 준 부채 등이 소개된다.

2부 ‘뒷날의 경계를 위해『징비록』을 쓰다’에서는 『징비록』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소개된다.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그가 제안하여 작성한 문서나, 이에 선조가 결정하여 내린 문서 등을 모두 이면지를 활용해 필사해두거나, 명나라 책력인 대통력(大統曆) 등에 그 때의 감회 등을 적어두었다. 훗날 류성룡은 하회 옥연정사에서 이들 기록들을 참조하면서 그가 경험했던 감회 등을 서술하여 처음에는『난후잡록』이라 하였으나, 『시경(詩經)』소비(小毖) 편의 ‘나는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삼가다’는 내용을 참조하여 최종으로 『징비록』이라 이름하였다. 여기에 『징비록』초본(국보 제132호) 이외에 2종의 목판본 『징비록』과 책판, 그리고 목판본 『징비록』에 포함되어 있는『진사록』,『군문등록』, 『근폭집』초본(보물 제460호) 등도 함께 소개된다.


최근 드라마로 잘 알려졌으나, 좀처럼 잘 볼 수 없었던 국보 제132호 『징비록』초본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8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특별 공개된다. 여기에 류성룡이 『징비록』초본을 작성할 때 사용했던 경상과 함께, 류성룡과 사이가 각별했던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1643) 종가 소장의 한글본 『징비록』(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5호)도 공개된다.


이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 제3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 “충효 이외 힘쓸 일은 없다”의 연계 전시로, 두 전시를 함께 보면 더욱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효경』에 ‘효자 집안에서 충신이 난다“는 말처럼, 안으로는 ‘효’를 바탕으로 집안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진정한 ‘충忠’을 실천했던 류성룡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주요전시유물

사진설명
징비록
징비록 懲毖錄 1604년

류성룡이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려는' 취지로 임진왜란의 원인 및 전황 등에 관해 기술한 책이다. 초간본 원본은 『징비록』특별전(2015.8.5~9.30) 기간 중 8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공개한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국보 제132호
난후잡록
난후잡록 亂後雜錄 16세기

류성룡이 전쟁 중에 겪었던 일과 자신이 지은 글의 초본을 평안도 관찰사가 올린 『진관관병편오책』의 뒷면에 쓴 것이다. 서문과 내용이 대부분 징비록과 중복되는 점 등에서 징비록을 쓰기 위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160호
한글본 징비록
한글본 징비록 19세기

한글로 번역한 2권 1책의 징비록으로, 『서애선생문집』과 함께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1643) 종가에 소장되어 있다. 이원익과 친하게 교류했던 서애 류성룡의 종가에는 『오리선생문집』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충현박물관 소장,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34호
영의정 교지
영의정 교지 領議政 敎旨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인 1592년 5월 2일에 류성룡이 영의정에 처음 임명되었을 때 받은 교지이다. 『징비록』에는 ‘저녁에 궁으로 돌아왔는데, 죄로 파직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 후 류성룡은 1593년 10월에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460-3호
유서통
유서통 諭書筒 16세기

국왕이 명령하거나 국왕에게 보고하는 문서 등을 넣었던 대나무 통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460호
경상
경상 經床 16세기

류성룡이 사용하던 대나무 경상이다. 판 밑면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1)가 경상의 전승 과정과 본인이 취득한 경위 그리고 수리한 내역 등을 기록한 글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투구
투구 套具 16세기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투구이다. 류성룡은 1592년(선조 25)에 도체찰사(都體察使 : 전쟁시 최고 군사직)가 되어 임진왜란 당시 현지에서 군사 업무를 총괄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460-1호
>당장시화첩
당장시화첩 唐將詩畵帖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의 장수로 온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이 류성룡에게 보낸 부채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160-8호

문의 :

관람 URL 바로가기

지도로 위치 확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