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아트오페라단 - G. Verdi Opera, Il Trovatore 90552


글로벌아트오페라단 - G. Verdi Opera, Il Trovatore

날짜 : 20130808 ~ 20130810

장소 :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대전 음악

 

 지역문화예술의 질적 향상과 오페라의 대중화에 힘쓰기 위해 노력해 온 (사)글로벌아트오페라단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를 야심차게 선보인다. 매년 다양한 오페라를 성공적으로 공연하며 호평을 받고 있는 글로벌아트오페라단의 이번 무대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들의 풍부한 성량, 깊은 음악성과 탁월한 연기, 세련된 무대매너가 조화를 이루어 관객을 압도하고 또한 양진모가 지휘하는 멘토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은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고 내용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2013년,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글로벌아트오페라단이 선사하는 최고의 공연이 될 것이다

 

▒ COMPOSER ▒ 

Giuseppe Verdi 주세페 베르디 
1813. 10. 10 - 1901. 1. 27 

베르디는 북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1813년 10월 10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행상인 상대로 조그마한 여인숙 겸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소년 시절의 베르디에게는 이른바 천재 소년다운 에피소드는 아무것도 전해져 있지 않다. 시골에서는 다소 그 음악적 재능이 눈에 띌 정도였다. 1832년 5월 18세 때 고향을 떠나 밀라노로 가서 밀라노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실패했다. 음악원의 판정은 첫째로 음악원의 입학 자격 연령을 4세나 초과한 것, 둘째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르디의 음악은 서투르고 소박하다 하였다. 결국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개인교수를 받아 작곡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 베르디에게 기회가 왔다. 밀라노 악우협회(樂友協會)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연주했을 때 베르디는 대리 지휘자 역할을 했는데 이 때의 역량이 인정되어 악우협회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 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최초의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작곡될 예정이었으나, 1834년에 베르디는 취직 차 일단 귀향하였고 그리고 1836년 아버지 친구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밀라노의 화려한 오페라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어 1839년 처자를 데리고 밀라노로 이주하였다. 이 해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어 다소의 성공을 거뒀다. 26세의 일이었다. 유명한 악보 출판업자인 조반니 리코르디가 이 오페라의 출판을 신청해 왔고, 스칼라 극장에서도 3편의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해 왔다. 전도가 양양하였으나 아들과 처를 차례로 잃어버리고, 더욱이 스칼라 극장이 오페라 부파를 작곡해 줄 것을 요구했기에 구상을 변경해서 <하루 만의 임금님>을 작곡했으나 무참히 실패하여 자신을 잃은 베르디는 한때 작곡을 단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원조나 조언으로 베르디는 이 위기를 극복하여 1842년부터 1850년에 걸쳐 14곡의 오페라를 썼다. 이러한 작품 가운데에는 <제1회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1843), <에르나니>(1844), <잔 다르크>(1845), <레냐노의 전쟁>(1849) 등 애국적인 독립정신을 구가한 작품이 특히 뛰어났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압박하에 있어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외침도 점차 높아졌으나 베르디의 오페라는 그러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디는 오페라에 애국주의를 주입함으로써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베르디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참으로 애국의 상징이었다.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외로부터도 초청되어 런던이나 파리에서 자작을 상연하여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오페라들은 베르디의 대표작으로는 생각되고 있지 않다. 사실 19세기 중엽의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시킨 것은 사실이나 베르디가 참으로 원숙 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1850년 이후의 일이다. 1850년 37세의 베르디가 40일 동안 단숨에 작곡해낸 <리골레토>는 이듬해 3월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오페라 사상 드물게 보는 영광을 불러일으켰다. 베르디도 다소 자신을 가졌던 듯하며 특히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초연 전에 거리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무대연습 때에도 가수에게 악보를 주지 않고 초연의 전야 겨우 악보가 주어졌다고 한다. 베르디의 생각대로 이 아리아는 일세를 풍미한 명가가 되었고 그의 명성은 더욱더 상승했다. <리골레토> 이후의 베르디는 그의 독특한 선율미와 극적 구성력을 마음껏 구사하여 여러 가지 인간감정, 등장인물을 정확히 묘사하여 여러가지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일트로바토레>(1853), <춘희>(1853), <돈 카를로스>(1867), <아이다>(1871), <오텔로>(1887), <팔스타프>(1893)등이 그 주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전과 같은 애국주의는 후퇴하고 어떤 정황, 또는 환경에서의 '인간 그 자체'의 표현이 의도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간성'을 오페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아마 모차르트와 비견할 만한 최고봉이라 하겠다. <리골레토>, <춘희>, <아이다> 모두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된 <오텔로>는 비극 오페라의 최고봉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인간성을 이만큼 훌륭히 오페라화할 수 있었던 작곡가는 아직까지 없다. 같은 셰익스피어로 된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이다. 여기에는 오페라 부파의 정신 승화, 고답적인 웃음의 교묘한 음악화가 보인다. 오페라 사상 이와 같은 불멸의 작품이 작곡된 시기에 베르디의 신변에도 잡다한 변화가 일어났다. 1859년 재혼하고 1861-1865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등 음악 이외의 일로 나날이 바빠졌다. 한편, 오페라 이외의 작품도 착수하였는데 최대 걸작은 이탈리아의 애국시인 만초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레퀴엠>이다. 부와 명성에 둘러싸인 베르디는 밀라노의 호텔에서 뇌일혈로 쓰러져 1901년 1월 27일 87세의 일생을 마쳤다.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우뚝 선 이 거장, '소리'를 위하여 일생을 건 이 거장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식에는 20만이 넘는 대군중이 참가 하였다고 한다. 


▒ SYNOPSIS ▒ 

작품개요 
연대 : 1853년 
초연 : 로마 아폴로 극장 
무대 : 15세기 초의 스페인 아라곤 지방. 

등장인물 
Manrico(만리코) / Tenor 
Leonora(레오노라) / Soprano 
Azucena(아주체나) / Mezzo Soprano 
Luna(루나) / Bariton 
Ferrando(페란도) / Bass 
Ines(이니스) / Soprano 
Un Messo and Ruiz(전령과 루이즈) / Tenor 

제1막 <결투> 
선대 루나 공작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막내 아들은 아직 아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수상한 노파가 그 어린 아이를 들여다 본 뒤로 어린 아들이 몸이 점점 쇠약해지므로 그 노파를 마법을 쓰는 마귀할멈으로 몰아서 화형에 처해 버렸다. 그날 밤, 어린 공자가 유괴되었다. 그리고 수상한 노파가 처형된 잿더미에서는 어린 아이의 백골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집시의 복수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선대 루나 공작은 유언으로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있을 아들을 찾아 달라고 하였다. 무대는 변해서 성관의 안뜰. 자정의 종이 울리자 아름다운 여자 관리 레오노라가 오늘밤도 이름 모를 트로바토레가 찾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그녀를 짝사랑하는 젊은 공작이 나타나서 트로바토레와 공작 사이에는 사랑의 결투가 벌어진다. 이 트로바토레야 말로 젊은 공작의 친동생인 가르시아였던 것이다. 그러나 공작과 트로바토레는 알지 못한다. 


제2막 <집시> 
아주체나 모자가 살고 있는 집시의 오막살이. 아주체나는 그 옛날 억울하게 처형된 어머니의 복수를 하고자, 어린 공자 가르시아를 유괴했던 것이다. 당시 아주체나는 공자를 불에 집어넣는 다는 것이 너무 당황해서 자기 아들을 불에 집어넣고 말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어린 공자 가르시아를 아들로 키울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트로바도레인 만리코이다. 그곳에 만리코가 결투로 죽은 줄로만 안 레오노라가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소식과 함께 공작이 그녀를 납치하려고 계획한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수녀원으로 달려간 만리코는 레오노라를 구출한다. 

제3막 <집시의 아들> 
카스트롤 성이 바라보이는 루나 공작의 진영. 피를 나눈 형제인 줄도 모르고 공작과 만리코는 내일 결전을 기약하고 있었다. 적의 스파이로 집시의 여자가 잡혀서 끌고 오는데 그녀가 아주체나 이다. 공작의 부하인 페란도는 그녀를 보고 그녀가 바로 어린 공자 가르시아를 태워 죽인 화형 당한 집시의 딸이라고 외쳤다. 그녀가 아니라고 하자, 공작은 부하들에게 끈을 힘껏 조여라고 한다. 고통에 힘겨워지자 그녀는 만리코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공작은 만리코가 동생을 죽인 집시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동생의 복수를 할겸 그를 죽일 것을 결심한다. 카스트롤 성에서는 레오노라와 만리코의 결혼피로연이 벌어지고 있다. 아주체나가 투옥된 사실이 전해지고 만리코는 혼자 어머니를 구하려고 적진으로 향한다. 


제4막 <처형> 
루나 공작의 성관. 어머니를 구하려온 만리코는 도리어 공작에게 잡히는 신세가 된다. 만리코를 구하려고 레오노라는 공자에게 공작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그 대신 만리코를 살려 달라고 부탁한다. 공작은 기뻐서 만리코를 석방하기 위해 안으로 사라진다. 레오노라는 미리 반지 속에 준비해 두었던 독약을 마신다. 장면은 바뀌어 감방 안… 만리코는 흥분한 아주체나를 자게 한다. 그 때 레오노라가 나타나서 빨리 도망치라고 한다. 만리코는 그녀가 정절을 지키지 못했음을 비관하며 저주의 말을 퍼붓고 필요 없으니 떠나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가 너무 힘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여 그녀에게 달려갔더니 그녀는 전신에 독약이 퍼져 죽어가고 있었다. 자기를 풀려나도록 하기 위해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만리코는 너무나도 크나큰 슬픔에 사로 잡힌다. 그 때 공작과 부하들이 감방으로 들어왔고, 속았음을 알게 된 공작은 분노로 가득 차 다시 만리코를 처형할 것을 명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외쳤다. 아주체나는 깨어나 두리번거리다가 만리코를 발견하고는 울부짖으며 자기 말을 들어보라고 하지만 공작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공작은 아주체나를 창가로 데리고 가 도끼로 만리코의 머리를 내려 치는 것을 보여 준다. 공작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놀라며 방금 당신은 당신의 동생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어머니, 마침내 당신의 복수를 하였습니다"라고 외친다. 그녀가 쓰러지고 막은 내린다.
 

문의 : 1661-0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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