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극단 제69회 정기공연 '메데아 네이쳐' 99018


인천시립극단 제69회 정기공연

날짜 : 20150130 ~ 20150207

장소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 연극





● 원 작 : 에우리피데스
● 극 작 : 홍 창 수
● 연 출 : 주 요 철


 

인천시립극단이 21세기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전 세계 연극계에 던지는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




□ 작품소개
 

 [메데아 네이처]는 인천시립극단 창립 25주년 기념공연으로 막이 오른다. 이 작품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쓴 [메데아]를 21세기 현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재창작한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당시에 떠돌던 이아손과 메데아 설화를 가져와 메데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메데아]에서는 설화에서 빈번하게 보여주는 마법사로서의 메데아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 대한 고통과 분노, 추방에 대한 억압과 복수의 의지 등, 한 여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메데아의 내면을 섬세하게 구축해놓고 있다.

모든 위대한 고전은 작가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제적 관점을 달리하면서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기 마련이다. 20세기 들어 인종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창작한 한스 얀의 [메데아](1926), 식민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창작한 하이너 뮐러의 『황폐한 물가 메데아자료 아르고호 사람들이 있는 풍경』(1982), 페미니즘 관점에서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한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아, 목소리들』(1996)은 메데아를 재창조한 대표적인 예들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메데아 네이처]는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메데아를 어떻게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는가? 기존의 메데아 재창조물들의 문제의식과 다르게, 미래지향의 발전적인 관점에서 오늘날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선,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를 포함하여 기존의 그리스 설화를 살펴보면, 그리스(이아손의 코린토스는 지금의 그리스의 지역)를 문명의 중심에 놓고 주변(메데아의 고향 콜키스는 지금의 그루지아Georgia 국가의 일부)을 야만으로 규정하여 허구화하였다. 이아손의 남성성, 문명성, 정복성과 메데아의 여성성, 마술성, 야만적 폭력성이 명료하게 대비되어 나타난다. 메데아를 마녀와 악녀의 화신으로 간주하는 사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현재적 관점을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라는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메데아 네이처]는 21세기 현대를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인 생태주의(Ecologism)를 추구한다. 메데아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생태주의는 오늘날의 과학 기술 발전이 인류를 포함한 지구 환경에 치명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는 반성적 인식에서 생겨난 학문이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인간이 자연과 세계의 주인이라는 근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의 고리’로 연결되어 균형 잡힌 하나의 전체라는 사유를 근본으로 한다. 이런 생태주의 관점은 메데아라는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메데아 네이처]의 메데아는 더 이상 마녀나 악녀가 아니다. 오히려 메데아는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숲과 자연의 일부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생명체로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다. 이것을 위해 작품  배경으로 세계 역사상 유럽이 침략하기 이전의 아메리칸 인디언의 사회와 삶과 정신을 끌어들였다. 이제 메데아는 더 이상 그리스와 유럽이 호출한 마녀가 아니다. 도시와 숲, 문명과 자연, 인간 중심과 자연 중심, 권력 또는 자본과 생명이라는 대립 구도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런 메데아가 이아손의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아들을 정말로 죽여야 한단 말인가? 고대 그리스와 이후 유럽에서 보여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21세기에도 계속 형상화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야 메데아로서의 존재가 성립되고 관철되는 것인가? [메데아 네이처]에서는 더 이상 무고한 두 아들을 희생양으로 허락하지 않는다. 극의 결말에서 잠든 두 아들이 깨어날 때, 즉 메데아가 두 아들에게 먹인 것이 죽음의 독약이 아니라 일시적인 수면제라는 것을 관객이 알아차릴 때,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끝이 나고 새로운 메데아가 탄생한다. 메데아는 문명의 중심이라 자만하는 기원전의 그리스 국가나 유럽이 창조한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지구 차원의 미래적 존재다.

 

□ 작가 의도
 
오래 전에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읽고 공부하는 가운데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다른 비극들도 그러하지만 그 당시 [메데아]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남편 이아손의 배신으로 친자를 살해하는 메데아의 존재는 악녀의 이미지로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었다. 2014년 1월 인천시립극단의 주요철 예술감독님이 새롭게 재창작하여 공연해보고 싶다며 [메데아]를 꺼냈을 때, 악녀 메데아의 기억을 떠올렸다.

  원고 청탁을 받고난 후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를 다시 정독하였고, 메데아와 관련된 자료들을 하나씩 찾아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로마신화』 중 메데아 관련 부분들을 읽었다. 이 저서는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이야기에서 발췌하고 윤색한 것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관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가장 대중적인 저서다.

엄밀히 말해 이 책에 등장하는 메데아 설화는 주인공으로서의 메데아 이야기라기보다는 조연으로서의 메데아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올코스 왕국의 청년 이아손이다. 메데아는 이아손의 목표 성취를 돕는 마법의 조력자로 등장한다. 메데아는 황금양가죽을 구하러 자신의 콜키스 왕국까지 온 이아손을 사랑하여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고 친동생을 죽이면서까지 이아손을 돕는다. 마법을 써서 이아손이 삼촌 펠리아스 왕의 시험들을 통과하게 하고 펠리아스 왕을 직접 살해한다. 이아손의 영웅 모험담의 일등공신이 바로 메데아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아]는 이런 이아손의 영웅담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장애와 위기가 생겼을 때마다 마법을 부리는 메데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신한 남편에 대한 고통과 분노, 추방에 대한 억압과 복수의 의지 등, 한 여인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메데아의 내면을 섬세하게 구축해놓고 있다.

메데아를 다룬 한 연구에 의하면, 메데아를 보는 그리스적 관점이 19세기까지는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20세기 들어와서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 창작물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한스 얀의 [메데아](1926)는 인종주의 비판의 관점에서 메데아를 늙고 살쪄서 더 이상 성적 매력이 없는 흑인여자로, 이아손을 호색한으로서 메데아의 마술 덕분에 동물이나 자식들과도 섹스하는 근친상간 등의 비윤리적 인간 관계를 다루었다. 하이너 뮐러의 『황폐한 물가 메데아자료 아르고호 사람들이 있는 풍경』(1982)은 이아손과 메데아의 관계를 약탈자와 피해자로 설정하여 식민주의 비판의 관점을 설정하였다. 이아손은 식민지에서 약탈을 행한 개인으로서의 정복자가 아니라, 식민지화 과정에서 야만적 행위를 일삼은 전체 정복자를 상징한다. 메데아는 이국땅에 끌려온 성적 쾌락의 대상, 이아손의 자식 낳아준 피해 여성이다.

크리스타 볼프의 『메데아, 목소리들』(1996)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지배적인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한다. 콜키스에서 메데아는 아버지가 권력 유지 위해 라이벌 관계인 아들을 살해한 데 환멸을 느껴 코린토스에서 살지만, 그곳은 콜키스보다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온갖 악행과 폭행이 자행되는 가부장제 사회로서 메데아가 자식 살해했다고 누명이 씌워져 처형당한다.

그렇다면,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메데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은 무엇인가? 기존에 메데아에 대해 새롭게 관점을 제시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오늘날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게 메데아를 어떻게 재창조할 수 있는가?

우선, 기존의 그리스 설화나 에우리피데스 작품은 그리스 중심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적 구도 아래 이아손의 문명성, 정복성과 메데아의 마술성, 야만성, 폭력성이 대비되어 있다. 당시 찬란한 문명을 선보였던 그리스의 관점에선 문명과 야만의 대비구도가 작품의 바탕에 자연스럽게 깔려 있었고, 메데아를 마녀와 악녀의 화신으로 간주했으리라. 그런데 그리스적 관점, 달리 말해 유럽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아손이 야망을 품고 메데아에게 추방 명령 내리는 크레온 왕이 지배하는 코린토스는 지금의 그리스 지역에 속한다. 메데아가 사는 콜키스는 그리스 동쪽의 에게해를 지나, 터키의 이스탄불이 있는 해협을 지나면 흑해가 나오는데, 흑해 동쪽에 있는 지금의 그루지아(또는 조지아) 나라의 서부 지역에 있는 왕국이다. 따라서 그리스에서 볼 때 콜키스란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동쪽의 야만국일 뿐이다. 새로운 현재적 관점을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라는 시간적 배경과, 그리스라는 설화적 공간, 나아가 콜키스를 포함하는 유럽의 역사적 공간 제약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21세기 현대를 성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으로 생태주의(Ecologism)를 제시할 수 있다. 메데아가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을 제시할 수 있다. 생태주의는 오늘날의 과학 기술 발전이 인류를 포함한 지구 환경에 치명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는 반성적 인식에서 생겨난 학문이다.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인간이 자연과 세계의 주인이라는 근대적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의 고리’로 연결되어 균형 잡힌 하나의 전체라는 사유를 근본으로 한다. 이런 생태주의 관점은 그리스 설화와 비극의 주인공 메데아라는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메데아는 더 이상 마녀나 악녀가 아니다. 오히려 메데아는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숲과 자연의 일부다. 인간으로서 자연을 개발의 대상, 착취의 대상, 자본의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생명체로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다. 이에 반해 이아손은 근대 권력과 자본의 상징적 존재다. 자신의 권력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의 은혜를 저버리고 파괴시키는 계기를 만드는 존재다. 이런 점에서 메데아 존재와 생태주의의 효과적인 구체화를 위해 내가 평소 추구하던 이상사회인, 유럽 침략 이전의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와 삶과 정신을 끌어들였다. 이제 메데아는 도시와 숲, 문명과 자연, 인간 중심과 자연 중심, 권력 또는 자본과 생명이라는 대립 구도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런 메데아가 이아손의 고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여야 한단 말인가? 고대 그리스와 이후 유럽에서 보여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21세기에도 계속 형상화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야 메데아로서의 존재가 관철되는 것인가? 생태주의와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더 이상 무고한 두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다.


 


□ 줄거리

 메데아는 남편 이아손이 자신을 버리고 도시 지배자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절망한다. 그리고 메데아가 8년 전 이아손과 나눈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과 동시에 두 남녀가 벌거벗은 채 장난치며 섹스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두 남녀의 섹스 장면은 메데아와 이아손의 과거 회상이 아니라, 글라우케와 이아손의 현실 장면이다. 한편, 이아손과 섹스를 한 글라우케는 도시 지배자의 딸로서 젊은데도 권력지향적이다. 그녀는 도시 확장을 위해서는 숲의 부족이 지닌 황금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며, 그 황금을 약탈해오면, 아버지 권력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결혼 후 이아손의 두 아이를 기르겠다고 약속한다.

메데아는 부상을 당한 채 추격을 당하고 있는 오빠를 우연히 만나 숲의 부족의 멸망과 숲의 파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오빠는 부족의 멸망이 아버지와 삼촌의 두 부족 간의 의심과 전쟁에 기인하는데, 근원적으로는 그 전쟁이 황금을 약탈해간 이아손 때문이라며, 그가 흘리고간 증표를 메데아에게 건네준다. 메데아의 분노는 극에 도달한다. 이아손은 황금 동굴의 위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이방인으로서 전염병에 걸렸을 때 메데아에 의해 목숨을 건졌고, 황금동굴 위치를 비밀로 약속했고, 더욱이 약자의 강자에 대한 부족간 맹약의 증거로 메데아가 그녀의 오빠를 단도로 찌르는 의식을 요구했으며, 무엇보다도 숲의 부족이 모시는 ‘위대하신 영’ 앞에성 메데아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메데아의 오빠를 발견한 추격자들은 오빠를 죽이고, 메데아를 체포하여 숲의 부족이냐고 묻는다. 메데아는 위대한 전사 이아손의 아내라고 대답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메데아는 자신이 살기 위해 오빠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이아손을 가장 증오하면서도 그의 아내라고 말한 자신의 비겁함에 울분을 터뜨린다. 그후 메데아는 말을 잊은 채 얼빠진 사람처럼 지낸다. 글라우케와 이아손의 결혼에 앞서 열린 축하공연에서 얼빠져 있던 메데아는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신들린 듯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더니 절정의 순간에 쓰러지고 만다.

메데아는 자신이 세상의 고아임을 독백한다. 자신이 살던 신성한 숲도, 가정과 이웃과 부족도 없고, 과거와 현재가 모두 죽었다고 토로하며 내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통스레 자문한다. 그리고 배신자 이아손과 글라우케, 그리고 자신의 두 아들까지 죽여 이아손을 평생 동안 고통 속에 지내게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녀의 또 다른 내면 의식(코러스가 대변)은 이성을 갖고 침착하게 생각하라고 하나, 메데아는 이성이 만들어낸 것이 도시, 폭력과 위선, 지옥이라며 살인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다. 메데아는 숲 속의 동물들로부터 살생의 본능과 힘을 빌고, 약초들로부터 여러 독액을 채취하여 살인을 준비한다. 
  메데아는 이아손에게 두 아들을 넘기고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다. 메데아는 도시의 삶을 비판한다. 도시의 삶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이고 사치스러우며 모함을 일삼는다. 이에 반해 자신의 부족이 살던 숲의 삶은 풍족하진 않지만 꼭 먹을만큼만 취하며 자연을 창조한 ‘위대하신 영’을 섬기며 살생을 당한 동물들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산다. 때마침 글라우케가 방문하자, 메데아는 글라우케에게 두 아들의 용맹을 보여주기 위해 검술 대련 시범을 보여준다. 메데아가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나지만, 메데아는 돌아와 그들을 엿본다. 글라우케는 이아손을 뺐기고 두 아들마저 순순히 내놓는 메데아의 사랑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메데아의 집에서 이아손에게 명령하여 옷을 벗기게 한 다음 섹스를 한다. 그러면서 당돌하게도 메데아가 이 섹스 장면을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애무를 하다가 글라우케는 목이 말라 이아손과 함께 과실주를 마시고는 쓰러진다. 그 과실주에는 메데아가 준비한 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아손도 독배를 마셔 죽으려 할 때, 메데아는 이아손에게 해독제를 먹여 그를 살려낸다. 이아손은 글라우케를 죽인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메데아는 오빠로부터 건네받은 증표를 보여주며 숲의 부족의 파멸과 숲의 파괴 내용을 전한다. 그리고 이아손이 보는 앞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독이 든 주스를 먹여 잠들게 한다. 이아손은 두 아들의 죽음을 막아보려 했으나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메데아는 주술을 하여 죽은 숲의 부족의 영혼들과 생명들의 영혼을 부른다. 한 영혼으로부터 작은 나무 한 그루를 건네받아 영혼들과 함께 나무를 심는 의식을 치른다. 의식 중에 메데아는 글라우케에게 애도를 표한다. 메데아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살던 곳을 둘러본다. 두 아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깨운다. 두 아들은 한껏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두 아들이 마신 음료는 독약이 아니라, 수면제였다. 메데아는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새 집을 향해 떠난다. 죽은 영혼들, 메데아의 뒤를 서서히 따라간다. 무대에는 생명의 나무와 죽은 글라우케, 홀로 남은 이아손이 있을 뿐이다.



 

□ 출연진

메데아/강주희
이아손/김현준
글라우케/송주희
코러스장/심영민
코러스/ 김세경, 정순미, 김태훈, 김희원, 이신애, 강성숙, 김문정, 서창희, 권순정, 이규호

○ 주인공 : 강주희(메데아), 김현준(이아손), 송주희(글라우케), 심영민(코러스장), 김세경(코러스, 오빠) * 상기 배역은 작품의 연습과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출연진

연출/주요철
극작/홍창수
드라마트루기/하형주
조연출/손경희
무대감독/최소현
무대디자인/임창주
조명디자인/이나구
의상디자인/정경희
소품디자인/서정인
작곡/강은구
안무/박이표
분장디자인/박팔영
단무장/김화산
사무단원/이옥희, 이돈형, 김새롬

문의 : 1588-2341

관람 URL 바로가기

지도로 위치 확인

주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