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특별전 '벽' 98309


소장품특별전

날짜 : 20140701 ~ 20150618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

경기 미술

  • 전시소개
  • 오직 길을 쫓아 걷는 이에게
    벽은 그저 막다른 벽일 뿐

    멈추고 쉬고 싶을 때 벽은
    오히려 휴식이고 만남이다.

    민낯으로 내걸린 그림
    벽에 기대선 조각은
    자기 이야기만 서두르지 않고
    남의 이야기도 듣고픈
    또 다른 벽이 되어 산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미술이 과연 그저 문학적, 종교적 이야기 혹은 자연이나 인물을 이미지로 비추어 보이는 것뿐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미 흘러넘치고 있는 이미지의 바다에 또 하나를 만들어 던지면 과연 그것으로 괜찮은가? 이런 질문은 한 세기를 넘는 기간 동안 현대미술의 구동축의 하나로 기능해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특별전 ‘벽’은 이 질문에 대한 여러 답변들 중 한 줄기를 보여준다. 이미지의 절대성을 거부하면서, 회화는 금빛 액자를 벗고 맨 얼굴로 벽에 걸리고 조각은 좌대 위로부터 맨 바닥으로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그림은 마치 물건처럼 벽에서 공간으로 돌출해 나오고 조각은 오히려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기를 즐기게 되었다. 어느 쪽이든 이들의 논리는 ‘벽’의 존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오십여 점의 소장품들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벽’이라는 조건을 새삼스럽게 고민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물론 각각의 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벽의 물리적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벽에 투사된 우리의 관념을 비틀기도 하고, 심지어 스스로 또 하나의 벽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 작품들은 관객과 작품이 공유하는 현실 공간에서의 ‘벽’을 새삼스럽게 우리에게 다시 인식시킨다. 벽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관객을 가상의 벽에서 해방시키고 벽 앞 열린 대화의 장에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1) 벽이 나오다

     

    “조각이란 잘려져 나와 어딘가에 세워져 있는 회화일 뿐이다”

    -프랭크 스텔라-

     

    액자를 벗어던진 회화는 스스로 물질적인 존재임을 강조하면서 점점 더 조각, 좀 더 정확하게는 ‘부조’와 유사한 어떤 것으로 진화되어갔다. 그러나 본래 조각에 회화적 환영을 더하기 위한 장치였던 부조라는 형식은 이제 평면적인 회화에 물질성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벽이 상징하는 현실의 시공간과 만나게 하는 전략으로 선택되었다.

     

    작가들은 평면을 자르고 구부리고 겹치는 방식으로 화면을 재구성하기도 하고, 작품의 뒷면을 뒤집어 보여주거나 아예 화면을 뚫어버리는 방식으로 회화에 대한 관객의 의례적인 기대를 어긋나게 한다. 또는 전시장에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를 화면의 요소로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도 하고, 뜻밖에도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관객들이 관습적인 환영에 젖어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벽은 그림이 걸린 벽면이라는 의미를 넘어 관객과 작품이 현실적으로 공유하는 조건으로서, 또한 관객과 긴밀하게 대화하는 주체로서 해석의 전면에 등장한다.

     

     

    (2) 벽에 기대다

     

    덩굴이 되어가는 벽은 벽이 된 덩굴과 뒤엉켜

    뜨거운 발바닥을 비벼대며

    까마득한 시간을 또 걸어가고 있었다.

    - 박수현 시 “下午의 벽” 중에서 -

     

    그림이 벽을 넘어서 세상과 만나려고 했듯이, 좌대에서 지면으로 걸어 내려온 조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벽과 바닥을 동시에 포섭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벽에 기대어 서면, 비록 구석이나마 그 공간 전체는 하나의 덩어리로 묶여진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구체적인 지점은 부정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공간이다.

     

    어떤 작품들은 벽과 바닥을 연결하는 가시적인 방식으로 ‘기대서기’를 시도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회화적인 벽면을 현실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는 캔버스 자체가 하나의 벽면인 것처럼 엉뚱한 제스처를 취하는가 하면, 작품과 관객들에게 예외 없이 작용하는 중력을 의식한 듯 벽에서 바닥으로 작품들을 축 늘어뜨리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들이 지나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기도 한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작품이 놓인 공간을 인식하고 반응하게 되고, 벽과 바닥을 공유하는 한 관객들도 동등한 해석의 권리를 갖는다. 이렇게 작품들은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대화를 시작하자고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3) 벽에 서다

     

    “여기에 전시될 작품은 그대로 우리들의 동()이요 사상이요 피요 그밖에 모든 것이다.

    우리들은 벌거벗은 몸둥이 그대로 차단(遮斷)된 벽 앞에 서 있다.

    - 벽동인회 발언문 중에서 (1960) -

     

    ‘벽에 서다’는 인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중심이 된다. ‘벽에 선 인간’은 유럽성당의 벽면부조나 우리의 사찰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조 형식의 가장 일반적인 소재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장미의 이름』에 견습 수도사 아드소가 수도원 벽에 새겨진 그로테스크한 부조조각에 압도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환영을 창조하는데 있어 부조형식의 힘을 간접적으로 짐작케 해 준다. 아마도 인간의 한계상황인 죽음을 환기시키는데 이 미라 같은 이미지만큼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 전시에서도 마치 고대의 화석처럼 돌이나 나무 혹은 금속에 새겨진 다양한 인물들이 벽과 공간의 그 좁은 틈새에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돋을새김이라는 부조 전통을 역으로 해석하여 음각으로 인물들을 재현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일상적인 소재로 재해석한 인물들을 통해 이 형식의 허상을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작가도 있다. 어떤 작가는 거울의 반영을 통해 우리가 있는 실제 공간까지 벽 속으로 가둬 버리는 이중적인 트릭을 쓰기도 한다. 회화작품들 역시 유머나 비틀림을 가미하여 그저 벽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공간으로 확장해 나오는 다양한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4) 벽에 말하다

     

    "그림은 예술과 삶, 둘 다에 관계한다. 나는 그 둘의 틈바구니에서 행동하려 애 쓴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벽에 말하다’에서는 기존의 화면을 일종의 벽면으로 간주하여 그 위에 무언가를 붙이거나 혹은 아예 벽면에 직접 붙이는 방식으로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엮어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히 벽면은 부조처럼 돌출되어 나오는 동시에, 사물들이 가지는 현실적인 맥락은 반대로 벽면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발견된’ 혹은 ‘고안된’ 오브제들이 작품 속으로 포함되면서 벽면과 관객 사이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대화가 시작된다. 폐기된 종이박스, 장바구니, 시계, 나무 패널, 도장, 가위 등 일상에서 사용되던 물품들은 본 모습 그대로 혹은 약간의 변형을 거친 후 벽면 위에 다시 배열된다. 각각의 사물들은 일상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이라는 새로운 맥락에 포함됨으로써 뜻밖의 의미를 추가로 가지게 된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는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열린 대화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이 사물들은 삶의 목소리를 벽에 전하고 벽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한다.

    문의 :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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